※아래 내용은 와타오시 번역님께서 번역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마법을 베는 검——무의 태도.
참격을 날리는 검——유의 태도.
지금 저는 강력한 두 기술을 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마음은 파문 하나 없이 고요했습니다.
다수의 마물에게 포위됐었던 지난번 싸움에서 저는 무언가를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유누라는 강적을 앞에 두자 어렴풋했던 무언가가 구체적으로 형태를 갖춰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무와 유, 어느 쪽도 아니야. 그 사이——경계를 벨 수 있다면?)
세계란 의미의 구분으로 성립됩니다.
존재와 존재는 각각의 의미를 구분 짓는 경계를 통해 나뉘어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경계를 부술 수 있다면——그 순간 저는 모든 걸 벨 수 있겠죠.
(필요한 건 힘이 아니에요. 봐야 할 건 시각을 통한 정보가 아니에요.)
의미와 의미의 경계를 판별하고, 그걸 절단하는 검.
그걸 완성하면 분명 뭐든지 벨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을 그것답게 만드는 의미를 절단한다. 중요한 건 그걸 판별하는 것.)
저는 유누를 보았습니다.
거리를 벌리고서 검은 구체를 난사하고 있습니다.
구체 하나하나가 필살의 일격입니다.
닿기만 해도 치명적인 공격을, 공중을 질주해 회피하면서, 저는 호흡을 가다듬었습니다.
“포기했습니까?”
“…….”
“이제는 입을 놀릴 여유도 없어진 건가요.”
“…….”
“시시한——.”
모든 것이 멀어지고 가까워집니다.
거리가 의미를 잃습니다.
지금, 제 마음에는 모든 게 비치는 느낌이었습니다.
무수히 존재하는 의미의 덩어리.
그중에서도 눈에 띄게 농밀하고 커다란 의미의 경계선을 감지하고서, 저는 그 경계를 부드럽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느릿하게 베어냈습니다.
“?! 뭣?!”
“…….”
검은 구체가 소멸합니다.
유누의 표정이 경악으로 일그러졌습니다.
“……뭘 한 거죠?”
“…….”
연달아 날아오는 검은 구체의 의미를 포착해 차례차례 소멸시켜 나갑니다.
의미를 잃은 공격은 무로 돌아갔습니다.
“윽…….”
“전부 간파했어요. 항복하시죠.”
“얕보지 마!”
방금보다 두 배가 넘는 숫자, 수십 개의 구체를 생성해 쏘아내는 유누.
하지만 저는 침착했습니다.
“흡……!”
짧은 호흡을 내뱉으며 최단 거리를 잇듯 검은 구체들을 향해 의미소멸의 검을 휘둘렀고, 모든 공격을 무로 돌려보냈습니다.
무를 베고, 유를 베고, 의미를 벤다——저는 이 기술에 경계의 태도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경계의 태도는 강력하지만, 의미의 경계를 포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오감에 큰 부담을 줍니다.
과도한 연속 사용은 힘들 것 같습니다.
하지면 겉으론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서,
“계속하시겠어요?”
“이게……!”
제가 조용히 묻자, 유누는 분노로 떨리는 원통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이미 유누와 다른 마족들의 연결은 끊겼고, 그녀의 지시는 마물들에게 닿지 않습니다.
다만 그녀가 가진 가호의 힘은 의미의 구분을 뛰어넘은 힘인지 여전히 건재해 보입니다.
그렇지만 제 감각은 유누와 세계의 경계마저 잡아내고 있었습니다.
이걸 베면 유누는 소멸합니다.
그랬을 때, 그녀의 바깥쪽에 그녀를 덮고 있는 무언가가 느껴졌습니다.
“유누, 당신은 외모를 바꾸고 있는 건가요?”
“……이제 와선 별 의미 없는 짓이군요.”
그렇게 읊조린 후, 그녀의 모습이 서서히 달라집니다.
동물에 가까웠던 외모가 곤충 같은 모습으로 변했고, 마치 여왕벌처럼 생긴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그 모습…… 어디선가……?”
“당신은 제 조부와 만난 적 있을 겁니다. 조부님은 삼대마공이었습니다.”
“라테스의 손녀였나요.”
라테스는 삼대마공 중에서도 가장 강한 힘을 지녔던 마족으로, 저는 메이, 로드 님과 함께 그와 맞서 싸웠었습니다.
“……어서 마무리를. 어차피 이 세상은 약육강식. 당신은 저보다 강했다. 그저 그뿐입니다.”
“싸움을 그만둘 생각은 없다는 뜻인가요?”
“저는 그 약육강식의 연쇄를 끝내고 싶은 겁니다. 오늘 살아남았다 쳐도 내일은? 무를 이루면 영원한 평온이 찾아옵니다. 어째서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까.”
“…….”
이 순간에 이르러서도 유누를 비롯한 마족과, 저 같은 인간 사이의 간극은 메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마족은 무를, 인간은 유를 갈구합니다.
이 단절은 메워질 수 없는 걸까요.
『잠깐 기다려 줄 수 있어?』
“?! 시몬?! 당신이 어떻게——.”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는 시몬의 목소리였습니다.
아무래도 텔레파시인 모양입니다.
『미샤 씨한테 목소리를 연결해달라고 했어. 유누랑 대화하게 해줘.』
“대화? 상대는 마족인데요?”
『응, 알고 있어. 그래도 부탁해. 이대로 베어버리는 건 쉽겠지만, 나는 조금 더 노력해 보고 싶어.』
“…….”
유누를 시몬과 대화하게 하는 건 약간 주저됐습니다.
시몬을 믿고 있긴 하지만, 그녀에겐 마족의 피가 흐릅니다.
유누와 대화하면서 혹시나 시몬이 좋지 못한 사상에 물들게 된다면 저로선 그때 가서 후회해도 늦겠죠.
『부탁이야, 알레어. 나는 마족과의 공존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
마족과의 공존.
시몬은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군요.
“알겠어요. 채널을 확장하면 될까요?”
『아니. 직접 만나서 대화하고 싶어. 데려와 줄 수 있어?』
“알겠어요.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저는 잠시 텔레파시를 멈추고 유누 쪽으로 의식을 돌렸습니다.
“당신과 대화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 모양이에요.”
“대화? 이 마당에 무슨 대화를 하라는 겁니까.”
“대화할 가치는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녀는 인간과 마족의 혼혈. 두 가치관을 동시에 지켜봐 온 사람이니까요.”
“——!”
유누의 얼굴에 커다란 동요가 스쳤습니다.
여태까지 보여준, 삶에 넌더리가 난 우울한 표정이나 저를 향하던 증오의 표정과는 다른, 순수한 경악으로 가득한 표정이었습니다.
“……대화하면 뭐가 달라진다는 거죠.”
“그건 대화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예요. 자, 따라오세요.”
저는 등에 멘 날개를 펄럭이며 유누를 유도하듯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누는 망설이는 기색이었지만, 이윽고 저를 뒤따라왔습니다.
◆◇◆◇◆
검문소로 돌아오자, 그곳엔 수많은 마물이 쓰러져 있는 게 보였고, 여기에도 격전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전투는 어느 정도 마무리됐는지, 여기저기서 다친 병사들이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마족?!”
그런 상황이었기에 우리의 모습을 본 사람들이 긴장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손을 내밀어 제지했습니다.
“이 자는 이미 무력화됐어요. 대화를 요청했기 때문에 데려온 거예요.”
“대화 같은 걸 할 수 있겠냐! 대체 몇 명이나 죽었는지——!”
“그건 마물이나 마족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 더더욱 대화의 여지 따윈 없는 거잖아?!”
“죽고 죽이고, 서로 증오하고. 저는 이제 지긋지긋한데 당신은 아닌가요?”
“——!”
“시몬은 공존의 길을 모색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싸우지 않고 끝낼 방법이 있다면 그게 최선이잖아요?”
“……허황된 소리야!”
“그럴지도 몰라요. 하지만 시도해 볼 가치는 있겠죠.”
병사들은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기색입니다.
당연하겠죠.
수없이 많은 동료를 잃었으니까요.
그런 원수의 우두머리나 다름없는 상대가 눈앞에 나타났으니 당장 칼을 뽑고 달려들지 않은 것만으로도 자제하고 있다고 해야겠죠.
그저 상대가 두려워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요.
“알레어!”
“시몬, 데려왔어요.”
검문소 안에서 나온 시몬은 제 뒤에 있는 유누를 보자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고마워, 알레어. 이제부턴 내가 얘기할게.”
“알겠어요. 하지만 혹시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즉시 베겠어요.”
“……알겠어. 되도록 그런 일이 없도록 해볼게.”
저는 시몬과 자리를 바꿨습니다.
함께 돌아온 릴리 님은 어디 계시는지 둘러보니 부상자 치료를 돕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게다가 병사가 아닌 마족 신봉자를요.
아마 아무도 내키지 않아 하는 일을 자청한 거겠죠.
릴리 님답네요.
“그럼, 유누. 너에겐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처럼 있지만, 우선은 먼저 이것만은 말해둘게.”
시몬은 유누를 가만히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 마족의 허무주의——나는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